민청학련 사건
반정부 시위가 하루아침에 '인민혁명 시도'로 둔갑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
1974년 4월 3일,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생과 종교인, 재야인사들의 움직임이 이어지자 박정희 정부는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어요. 정부는 이들의 활동을 '민청학련'이라는 조직이 배후에서 인민혁명을 꾀한 것이라고 규정했고, 약 1,000여 명을 조사해 180명을 재판에 넘겼어요. 검거된 이들 중에는 훗날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야기가 달라졌어요
조사 과정에서 불법 연행과 고문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 훗날 드러났어요.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는 2005년 이 사건이 학생운동을 탄압하려고 반정부 시위를 공산주의 배후조종으로 왜곡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어요.
그 뒤로는
관련자들은 2009년 이후 재심에서 잇따라 무죄와 면소를 선고받으며 30여 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