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양민 학살 사건
공비 소탕을 명분으로 마을 주민 719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 부대가 '공비 소탕' 작전을 벌이며 마을 주민들을 집단으로 총살했어요. 사흘에 걸쳐 청연골, 탄량골, 박산골 등에서 모두 719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14세 이하 어린이였어요.
그런데 이야기가 달라졌어요
당시 군은 주민들을 공비 협력자로 몰아 학살을 정당화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무장하지 않은 노인과 여성,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사건이 은폐될 뻔했으나 지역 국회의원의 국회 폭로로 진상이 드러났고, 내무·법무·국방 3부 장관이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죠.
그 뒤로는
사건 지휘 책임자들은 군법회의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어요. 1996년에야 관련 특별법이 제정돼 희생자들의 명예가 공식적으로 회복됐고, 2004년 거창사건추모공원이 조성됐어요.
